쓰레기통 15

열심히 찾아 헤맸지만

열심히 찾아 헤맸지만 궁극적으로 찾지 못했고 심지어 중도에 실패도 했다. 인생의 목적이라도 되는 듯, 나는 내 반려자를 열심히도 찾아 헤맸다. 이 사람이 아닐까, 아닌가. 혹은 이 사람일까. 그렇게 찾아 헤매다가 결국 시간은 흘렀고 중도에 눈이 높다, 욕심을 버려라는 등의 가스라이팅을 당한 뒤에 그냥 저냥 선택한 사람과는 1년도 채 살지 못하고 이혼했다. 내가 진짜로 찾았던 게 뭐였을까. 2008년 어느날 쓴 일기처럼 웃기지도 않는 안정감?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 그날의 일기처럼 끝은 없었다. 결혼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 안정감은 누구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남들이 평범하게 꾸려가는 평범한 일상을 갈망했었다. 그래서 그러지 못한 나를 불완전하다거나 혹은 불안정하다고 치부하며 산 것 ..

쓰레기통 2024.02.20

2008. 12. 11 비가온다

어두운 바깥에 서 있는 나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존재감마저 사라진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코와 목으로 전해져 내 몸 속에서 그와 같은 차가운 비가 내리는 것 같다. 깜깜한 하늘 아래 나 혼자만은 아닐텐데 나는 왜그렇도록 혼자이길 스스로 세뇌하고 있는걸까. 그냥 외로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더 독해지길 바라는걸까. 단순히 어두움을 즐기며 고독하고 싶어하는 걸까. 밤마다 비는 오고 그럴때마다 난 그 속에서 그냥 혼자였다. 세상사람 그렇게 많다고 하지만 난 그냥 그속에서 혼자였다.

쓰레기통 2023.06.22

2008.12.6. 어떨땐

어떤 일은 그냥 내버려두는게 나을때가 있다. 조바심내며 안달하면서 손가락을 들이밀며 병 목 깊이 박혀있는 코르크마개를 계속해서 안으로 쑤셔대는 꼴만 될 뿐이란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야 말 때가 있다는게 문제다. 더 악화되는것보다 지금 그렇게 이도저도 아니게 끼워져있는게 차라리 안전할지도 모른다. 그치만 병을 보고 있자면 내 목구멍속에 마개가 끼어있는것처럼 답답해서 하루종일 병을 만지작거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가끔은 내용물이 어떻게되든 깨버릴까. 혹은 젓가락으로 쑤셔가며 코르크가루가 둥둥뜬 와인을 그냥 마셔버릴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지만 내게 와인을 준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난 그냥 맛있게 마신 척, 훌륭한 척 연기를 하면서 병을 깊숙이 숨겨두곤 또 혼자 끙끙 앓곤 하는 것이다.

쓰레기통 2023.06.22

2008. 12. 2. 2008

2008년 12월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내가 지나온 2008년은 전쟁 그 자체였다.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큰 일들이 뭉텅 뭉텅 있던 한 해였던것 같다. 사람에 대한 불신도 깊어지고, 믿음에 대한 배신도 크게 당했고,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받던 스트레스도 꽤 컸다. 12월이 되고보니 어째 그냥 한해를 한바퀴 돌고 제자리로 온 기분이 든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2월까지. 말그대로 난 한바퀴만 쭉 돌아왔다. 남은것 하나없이 복잡한 기억만 가지고 한바퀴를 돌아온 셈이다. 그렇게 진폭이 크던 내 감정들이 지치고 지쳐서 스스로를 놓아버렸던 시간을 지나고나서보니 2008년 시작 전 나의 모토는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우습지만 바로 안정감 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나의 안정감은 오지 않았고 폭풍속에서 ..

쓰레기통 2023.06.22

2016.5.1. 쓰레기 ver1.

헤어지기로 결심한 건 꽤나 오래 전이다. 결과를 예상하고 또 예상하고 비교적 마음의 준비를 오래 했더라도 헤어지는건 헤어지는 것이었다. 헤어지고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불규칙. 자기 전, 퇴근할 때 규칙적으로 했던 전화나 문자 같은 것들. 습관적으로 그 시간이 되면 핸드폰을 보게된다. 그러면서 한번 더 그가 떠오르게 되면서 그와 있었던 일들이 꼬리를 물게 된다. 그리고 지나간 일들이란 것에 대한 의미를 의심하곤 한다. 그리고 시나리오. 그랬더라면 혹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는 참 부질없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역시나 그런 상상들의 무의미를 곱씹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게 된다. 이런 감정들은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까. 허전함. 허무함. 그리움. 후회. 이별의 아픔.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불가. 시간이 빨리 ..

쓰레기통 2023.06.08

2014.12.31. 이제야 알겠네

작년 초, 애인과 헤어지고 한 두달여간 생각보다 괜찮았었다. 허전함이나 쓸쓸함은 있던것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지극히 당연한 증상이라며 스스로를 납득시키기도 했고 최대한 헤어짐의 후폭풍을 이성적으로 인지하려 노력도 했고. 상당히 잘 극복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뒤돌아 본 나는 내 생각같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 때도 여지없이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이성적이고 잘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소한 자극에도 흔들렸고 눈물빼기 일쑤였다. 그 모든 자극이 내 분노와 절망을 부추긴다며 그 사소하고 작은 자극들에게 저주를 쏟아부어대고 상황을 원망했으며 주체할 수 없을만큼 스스로를 터뜨려댔다. 원인은 주변과 나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주변도, 나 자신도 너덜너덜 해지고..

쓰레기통 2023.06.08

2014.9.12. 백도 같은 여자

외유내강. 겉은 부드럽고 달콤하고 말랑한 과육으로 덮여있지만 속은 단단하다못해 잘못 깨물면 이가 나가든가 입술이 찢어지는 커다란 씨앗을 품은 백도같은 여자가 이상형이란다. 백도를 집어들었다가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 그대로 던질 뻔 했다. '겉이 말랑해보이면 만만해 보이고 만만해 보이면 막 대하는게 세상이라고. 말랑하던 여자도 겉이 흉터딱지처럼 단단해지고 속은 상처로 뭉개지는 외강내유가 요즘 세상이 만들어낸 여자들이야' '그러니까 이상형이란거지. 유들한 태도와 강인한 정신력. 요샌 유리멘탈인게 자랑이라고 기대기만 하려고하고 아니면 징징대며 원하는 걸 얻어내려는 여자 뿐이야' 라고 하는 그에게 아무말도 못했다. 사실. 그래. 말하자면 그가 말하는 그 여자가 나이기도 하니까. 백도를 제자리에 두고 뒤돌아 ..

쓰레기통 2023.06.08

2014.7.23. 장마

오랜만의 비 구경이다. 빗방울이 서로 스치고 뭉쳐져 바닥에 모여서는 서로 부딪치다가 엉기며 내는 소리는 제법 청량하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겹치고 또 겹쳐 화음을 만든다. 그 소리들은 내 몸속에 흐르는 피를 요동치게 한다. 혈관마다 타고 온 몸을 흐르는 그 피들이 찰박거리는 것같다. 바닥에 넓게 고인 물 웅덩이에 수십 수백개의 파동이 일고 그 수십 수백개의 파장이 겹치고 겹치고 또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또 만들어지는걸 보고 있자면 나의 시간은 멈추고 빗방울만이 온 세상에 떨어지는 기분도 든다. 빗소리가 공간 가득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고 온 세상을 꽉 채울것같이 크게 들리기 시작하자 점점 빗줄기와 바람이 거세어져서는 내 얼굴과 다리에 닿아 스며든다. 내 시간은 그제야 흐른다. 오랜만에 우울하지 않고 비 ..

쓰레기통 2023.06.08

2014.6.12. 부질없다

부질없는짓임을 알면서도 소화가 되지않자 손가락을 밀어넣어보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고 지내면 천천히 내려갈 것들이지만 꺼내지도, 그렇다고 바로 소화시키지도 못할 것들이 순간순간 답답해서 손가락을 밀어넣어보았다. 어떤것도 손가락 끝에 걸리지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뭔가가 걸리길 기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그런 행위조차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딜수 없어지므로 의미없고 부질없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차분하게. 시계를 바라보지 않고 일분 일초 시간이 가면 저절로 사라져 배설될 것들임에도 굳이 들쑤셔서 상처를 만드는건 오히려 내 손이었다. 그래서 잘라내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건 물리적 아픔때문이 아니다. 손이 아니라해도 나는 무언가로 들쑤시고 있..

쓰레기통 2023.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