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두 번 있는 명절중 하나가 돌아왔다.
아무것도 없는 명절은 올해로 3년이 되었을까.
엄마는 3~4년 전부터 치매증상을 보이셨다.
자식들 모두 출가중이고 아버지도 바쁘셔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엄마는 치매인 줄도 모르고
일년 정도를 보내셨다.
3년 전쯤 엄마가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의심했다.
아버지가 가져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치매 전조 증상이었던거다.
장롱 깊숙히 숨겨둔 가방은 곧 발견되었다.
그리고나서 병원을 찾았고 치매 초기진단을 받았다.
자기가 치매라는걸 안 순간 온 집안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조금 지나면 잊어버리시지만.
약봉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아버린다고 하신다.
초기라고 하지만 체감은 그렇지 못했다.
밥 금방 먹고 밥먹자는 소리를 열 번도 더하고
심지어 자식들이 찾아왔던 것도 기억못하고
옛날 이야기만 하고
드라마는 연결이 안되 보지 못하고
누굴 만나도 그걸 들킬가 겁나 집밖 출입을 안하고
물건이나 돈을 숨기고 밤새도록 찾고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편집증처럼 자신의 상상을 기정사실처럼 믿고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일어났다.
이런 증상은 최근 3년간 급격히 진행되었다.
치매약과 우울증약을 계속 먹고 병원을 다녔음에도.
막상 이야기를 하면 정상이지만
곧 물었던 걸 또 묻고 대답했던걸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도 최근 기억부터 지워지고 점점 과거도 왜곡되며
과도며 가위며 뾰족한 것들로 이불과 옷을
난도질해놓고 다음날 도둑이 들었다고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장보러 나가기조차 안하시는 덕에
우리 식구들의 명절은 시장에서 사온 음식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그런 추석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추석 전 주 주말에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침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는거였다.
전화기도 지갑도 놓고 겨울점퍼를 입고 가방에
약만 가득 채워서 말이다.
비상이 걸렸다.
자식들은 각자 위치에서 고향으로 출발했고
신고를 하고 씨씨티비를 뒤졌다.
결국 엄마가 자진해서 파출소로가서 집을 찾아달랬단다.
그래서...찾았다.
가슴이 덜컹덜컹 몇 번이 떨어졌는지 모른다.
왜 무슨 일로 나가셨는지도 모른다.
곧 자신이 길을 잃었던 것도 잊으셨다.
추석이 오고 자식들은 각자 맡은걸 사가지고
고향으로 향했다.
엄마는 머리도 하얗게 새어 있었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이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토록 괄괄하던 양반이 이젠 핸드폰 전원도
켤 줄 모르게 변해 있었다.
가슴이 시린것보다, 슬픔보다 더 큰 아픔은
"의사가 돌팔이 아냐? 왜 전보다 심해졌냐고"
"갑자기 또 가출하심 어떡하지? 자주 그럼 어떡하지?"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추석인듯 아닌듯 우린 사온 전이며 송편을 데워먹었다.
30분에 한번씩 너희들 언제왔냐는 물음에
반복해서 대꾸를 하면서
우리들 얼굴에 근심은 깊어졌다.
가는 순간까지도 기억을 못하셨다.
주변의 어머니의 잔소리에 투덜대는 소리가 부럽다.
잔소리 하시던 엄마도 그립다.
어디까지 날 기억하실까.
언제까지 날 기억하실까.
명절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렇게 명절도, 그 순간의 엄마도 지나간다.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사라진
우리들과 명절이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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