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할 일이 많았다.
피부과에 갔다가 사무실 들려서 일 마무리좀 짓고
마침 근처였던 결혼식장 갔다가 돌아와서
공부를 하려고 했다.
동생이 오늘 강아지 병원 데려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고향 내려가는걸 보류했기 때문이었다.
병원 데려가봐야 치료를 견디지 못할것 같다며
수의사쌤이 말렸다고 한다.
동생이 병원 나오자마자 연락을 해왔다.
강아지가 밥을 안먹는다고 한다.
왜 이제야 그 얘기를 하냐며 바로 고향으로 갔다.
내가 간다고 뭘 먹겠냐 싶겠지만
나라도 가야 뭐라도 주사기로 억지로라도 먹일까 싶어서였다.
강아지는 마치 세상 다 산 노인 같았다.
엄마 말로는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 보는 기분이란다.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고 서 있다.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멍하니 서 있다.
멍하니 화장실을 보고 서 있고
멍하니 자기가 매일 앉아 놀던 자리를 보고 서 있고
멍하니 늘 간식을 달라고 보채던 자리에 서 있다.
지난 구정때만해도 징징거리고 뛰어다니던 녀석이
곧 죽을 것처럼 그러는 모습을 보이니 눈물이 터져버렸다.
배는 복수가 차서 터질 것 같고
윤기가 반질반질 나던 털은 부스스했다.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던 코도 말라서
딱지가 하얗게 앉아있었다.
사료를 불려 으깨서 주사기에 넣고 억지로 먹였다.
얼굴 언저리가 사료죽으로 엉망이 되어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죽을 힘을 다해 거부했다.
억지로 억지로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의 사료를 먹였다.
강아지는 곧 화장실로 가더니 설사를 했고
그러고는 늘상 간식달라고 보채던 곳을 지나
또다시 멍하니 서 있었다.
가끔 사료그릇으로 가서 냄새를 맡았지만 곁에 있는 물로
목만 간신히 축이고는 다시 멍하니 서 있었다.
잘 때가 다 되어서 내가 눕자 그제서야 발 끝 언저리에 누웠다.
숨소리가 그릉그릉 좋지 않았다.
누워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소리가 이불로 고스란히 전해져왔고
강아지가 뒤척일때마다 놀라서 깨서는
상태를 확인하고는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무사히 하룻밤이 지났다.
병원에서는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산책시키지 말라고 했지만
바깥 공기라도 쐬어주고 싶어 안고 밖으로 나와
나무둥치 밑에 내려 놓고 냄새라도 맡게 해주었다.
축 쳐져있던 꼬리가 오랜만에 올라가고
생기있는 눈밑으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반경 2미터 정도만 움직이게 하고는 다시 안아 집으로 데려왔다.
그나마도 즐거웠는지 내가 문간에만 서도
눈을 빛내며 징징거리기까지 했다.
그 좋아하는 산책도 많이 못해준게 너무 미안했다.
주말 내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기전에 주사기로 얼마간의 사료를 먹인 후에
눈에 밟히는 녀석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헤어질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수가 없다.
지난번 병원에 처음 간 이후로 매일밤 울면서 자다보니
나도 할머니가 다 되었다.
애초에 내가 데려온 녀석이었고 내 손을 가장 많이 탔었고
가장 오래 내 곁에 있던 반려견이었다.
15살이 되면서 마음이 불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몸 상태가 악화되는 걸 보기가
너무 힘들고 참을수가 없다.
이번주...이번주를 못넘길것 같다.
적어도 내가 곁에 있을때 떠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라도
부려보고 싶다.
이번주를 견딜수 있을까.
나는 견딜 수 있을까.
네가 너무너무 그리워서,
너를 쓰다듬고 만져주고 싶어서
어떻게 하지.
못 해준것만 생각나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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