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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24. 무지개다리

by ㅇ심해어ㅇ 2023. 6. 8.
21일 새벽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상태가 너무 안좋다는 얘길 듣고 18일에 본가가서 데려와 버렸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간은 하루종일 끼고 억지로 먹이고 재우고 했는데
출근하고 나서가 너무 걱정이었다.
 
아프리카티비를 씨씨티비로 이용해보려고 했지만 실패.
그렇게 월요일에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했고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버티고는 있었지만 눈은 퀭해지고 눈꼽이 눈 안에 잔뜩 낀 채로
문 앞에서 간신히 서 있었다.
그나마 설탕물은 다 먹었는데 소변도 한번 안보고 있었나보다.
아 정말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드니 너무 마음이 아파 보기도 힘들었다.
주사기로 죽을 넣어줘도 삼키지 않고 물고만 있다가 주르륵 흘려버렸다.
더 이상 억지로 뭘 먹이는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검색하다가 공기계를 가지고 씨씨티비처럼 활용할 수 있는 앱을 찾았다.
화요일 아침에 부랴부랴 설치하고 집을 나섰다.
마음이 이상하게 무겁지가 않았다.
사무실에 와서도 틈틈히 뭘 하고 있나 확인했지만 움직임은 별로 없었다.
그냥 내가 퇴근할때까지만 그대로 있어주길 바랬다.
음성지원이 되어 가끔가끔 이름을 불러 주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오후가 되자 비틀비틀 일어나 힘들게 고개를 들고 침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날 찾고 있나보다.
곧 문쪽을 바라봤다가는 내가 설치한 공기계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오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소리가 들려서 그 쪽으로 와서 누웠나보다.
강아지가 사라진 쪽은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쌓아둔 곳이라 편하게 누울 곳도 없었다.
아마 걸어오고는 그 옆에 쓰러진 것 같다.
 
한동안 미동이 없더니 조금 뒤 일어나면서 바닥에 세워둔 공기계를 쳤나보다.
핸드폰 렌즈가 천장을 비추고 곧이어 강아지가 그 위에서 헐떡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침에 억지로 먹인 죽이 입 양쪽에 새어 굳어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 위에 서 있던 녀석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건 오후 6시쯤.
 
불안한 마음으로 퇴근을 한 시간은 또 9시였고,
강아지는 어제보다도 더 위태롭게 고개를 떨구고 간신히 문 앞에 서 있었다.
울면서 뛰쳐들어가 강아지를 안아서 뉘여놓았다.
바닥엔 설사를 해 놓고 그 위에서 몇 번을 미끄러졌나보다.
물엔 입도 대지 않았다.
뜨거운 물을 받아 수건으로 입이며 몸을 씻기고 옷을 벗겨 얼른 빨고 드라이로 말려 다시 입혔다.
바닥을 눈물로 닦는지, 뭘로 닦는지도 모르게 얼른 정리를 하고
전기장판을 틀고 침대위로 강아지를 옮겼다.
숨쉬기가 힘든지 아랫턱이 계속 내려왔다.
헉헉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자 나도 모르게 강아지를 끌어안고
버티지마, 그만 가도 돼, 난 괜찮아 하면서 오열을 했다.
그렇게 강아지를 옆에 눕혀놓고 계속해서 보고 있는데
눈동자가 아래로 내려가고 턱은 점점 벌어지고 고개도 점점 위로 향했다.
그러더니 한번 더 설사를 하고는 힘든 숨을 몰아 쉬었다.
 
오늘 밤 못넘기겠구나..
 
앞발을 잡아주는데 어디서 힘이 나는지 움켜 쥐기라도 하듯
내 손을 잡았다.
병원에 가는 것처럼 무서울때마다 안겨서 그렇게 움켜쥐듯 날 잡았던 아이였다.
끊임없이 그 작은 발로 내 손을 잡으려고 오무리고 또 오무렸다.
그런 용을 쓰는 것도 안쓰려워 앞발을 두 손으로 꼭 잡아 주었다.
 
그만 해도 돼..괜찮아..괜찮아..
 
감기몸살도 온 데다가 온갖 신경을 쓸 일들이 많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깜짝놀라 두 시쯤 깨어서 강아지 심장에 손을 대어보았다.
아직 심장은 뛰고 있었다. 제발..제발..
여전히 벌어진 입으로 숨을 쉬려다보니 계속해서 침이며 이물질이
입 옆으로 흘러내려왔다.
 
토닥이다가 다시 잠들었다가 놀라서 깬 건 새벽 네 시였다.
머리를 쓰다듬는데 따뜻하지가 않았다.
벌떡 일어나 몸을 만지는데 이미 몸이 굳어 있었다.
그 작은 앞발도 더 이상 잡으려고 하지 않았고
반쯤 뜬 눈은 더 이상 감기지 않았다.
 
강아지를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다섯시쯤 동생에서 문자를 하고 펑펑 울다가 지쳐 깨서는
싸늘한 녀석을 포대기로 감싸놓고 우라질 출근을 했다.
오늘 강아지 화장을 해야하니 조금 일찍 가겠다고 하고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 계속 시계만 보다가 뛰쳐나왔다.
 
설마 다시 살아나진 않겠지..
이상한 생각들로 어지러운 상태로 집 문을 열자
녀석은 아침 그 상태 그대로였다.
몸을 쓰다듬자 '허어..'하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까지 몸에 남아있던 공기가 빠져나갔다.
다리는 벌써 파래져 있었지만 몸통은 여전히 온기가 있었다.
그 녀석을 끌어안고 한동안 펑펑 울다가 강아지 장례 업체를 찾아갔다.
동생도 회사에 얘기하고 서울로 왔고 둘이 울며 장례를 치뤘다.
 
장례업체는 예의는 갖췄지만 루틴화 된 일을 하듯
강아지 입 주변을 조금 닦는 척 하고 조화를 올리고
향을 피우게 하고 조문을 읽어준 뒤 시간을 조금 주고는
화장하는 기계에 강아지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바로 사무실로 가자고 하고 결제금액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대기실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고
나는 동생에게 마지막 가던 모습을 이야기해 주었다.
 
한시간 좀 안되어 내 강아지는 작은 봉투에 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녀석은 종이상자에 담겨 내 손에 전달되었다.
데려 올 때도, 갈 때도 묵직했던 녀석은 너무 가벼워져
내 손밑에서 달랑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영정사진이라며 뽑아준 A4크기의 컬러프린트물을 꺼내놓고
또 한동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는지
진짜 할 만큼 해서인지
오히려 뭔가 홀가분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전에 책상에 놓여있는 녀석에게
미친년처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조만간 고향 내려가서 녀석이 그렇게 나서길 좋아했던 곳에
뿌려줘야겠다.
 
15년간 늘 한결같이 꼬리쳐주고 애교 떨어주고 먹성 좋았던
우리 똥장군이 앓은 지 한달 만에 뼈만 남아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선 아마 그 전부터 쭈욱 아파왔을거란다.
체력 좋고 튼튼했기 때문에 너무 늦었을 때 증상이 나타났던 거란다.
그런 말을 듣자니 죄책감도 많이 들었다.
 
꽁꽁거리면서 먹고 있는것 내놓으라고
시위하던 게 불과 구정때였다.
 
마지막 가던 날 그 녀석이 내가 퇴근해서 돌아올때까지
끝까지 버텨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고맙다.
곧 넘어질 것 같이 휘청거리면서도 내가 올때까지
정신 놓지 않고 서 있던 것 같았다.
안아서 눕혀준 후로 한번도 일어서지 못하고
그 모습 그대로 떠났으니 말이다.
 
지금은 아프지 않고 무지개 다리 잘 건너 갔을거다.
거긴 같이 놀 친구들도 많겠지.
놀면서 날 기다려 줄거라고 믿는다.
 
외롭게 보내지 않아 다행이다.
이젠 아프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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