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 8. 12. 사랑하는 사람들

by ㅇ심해어ㅇ 2023. 6. 22.

동생이 연수를 간 사이에도 난 한번도 동생방에 들어가지 않았었다.
치워도 치워도 병인 것처럼 어지르는 동생의 방에 들어가면
내 머리가 다 아파 버렸기 때문에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동생은 회사에서 돌아오면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거나
제 방에 틀어박혀 인터넷 서핑을 즐기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 가장 먼저 집을 나섰었다.
주말이면 언제나 약속이 있어 집에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설령 있더라도 언제나 자고 있는 모습 뿐.

원래가 말수도 적고 붙임성 있는 녀석이 아니기에
나는 3살이나 많은 누나가 되가지고도 동생에게
툴툴대거나 양말 뒤집어 벗어놓지 말라는 핀잔만 할 뿐이었다.

오늘은 성능좋은 동생의 컴퓨터를 잠깐 빌려 쓸까해서 들어갔는데
언니가 그새 동생 이부자리도 빨아널고 청소를 했나보다.
예전만큼 가관은 아니었다.

둘러보다가 결국 하루종일
동생방의 튀어나온 장롱도 제자리에 넣고
그러면서 나온 와이셔츠며 옷가지들을 빨아 널고 다렸다.
한참을 다림질에 열중해 있는데 언니가 들어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언니에게 동생 방에 가보라 했다.
왜?왜 하던 언니가 와..하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얘 이거 보면 엄청 좋아하겠는데'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표정을 관리하며
그런 동생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거 누가 한거야' 하는 그 녀석의 표정은 분명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티를 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절대 '고맙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러하고 언니가 그러하다.
그리고 동생이 그러하다.
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사랑의 표현 방법이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원래 그냥 하던 일인 듯.
별거 아닌 듯.
당연한 듯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 9. 3. 행복과 불행의 사소한 갭  (0) 2023.06.22
2010. 8. 21. 고양이  (0) 2023.06.22
2009. 11. 6. 오빠들, 해결해주려고 할 필요 없어요  (0) 2023.06.22
2017.3.24. 무지개다리  (0) 2023.06.08
2015.9.29. 추석과 엄마  (0) 2023.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