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해야할 일들을 모두 재끼고 친구를 만났다.
저녁에 잠깐만 보려고 했던건데 그러지 못했다.
술을 많이 먹었다.
집 근처에서 잠시 머뭇대다가
그가 살던 집 근처로 발길을 옮겼다.
그가 살던 집 앞, 그가 항상 차를 대던 그 주차장 앞에 멈춰섰다.
초점 흐린 눈으로 그가 살던 집 창문을
하염없이 올려다 보았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년 반도 넘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집구조가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렸던 나또한 생생하다.
발길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가 언제나 고집을 부리며 다녔던 그 길로.
힘들게 뭐하러 언덕으로 다니냐는 핀잔을 주던 그 길.
그는 나를 보러 올때도, 나를 바래다주고 갈 때도
언제나 그 힘든길로 다녔다.
그 길을 천천히 따라 오르며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상해 보았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오랜만에
하염없이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러고 싶었다.
그가 언제나 굳게 잡아주던 투박한 손의 감촉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손이라면..어디든 따라갈 수 있을것 같았던
단단한 믿음을 주던. 그 못생긴 손이.
그에 대한 생각을 접기로 했었었고 그렇게 했었다.
나도, 그도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비록 그것이 연애로 끝났을지언정
후회없이 만났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한편으로
그와같은 사람은 만날수 없겠다는 생각에 서글펐다.
그렇기에 그가 더 생각났을지도 모른다.
많은 것이 변해있다.
그가 처음 내게 고백했던 그 술집은 사라졌고
그와 기대어 얘기하던 그 집의 담장은 무너졌다.
사이사이 누비던 골목은 큰길이 되었고
자주가던 단골집은 주인이 바뀌었다.
2년도 채 안된 시간이지만 많이도 변했고
그 안의 추억들도 이제 흑백이 되어가던 때에
문득 생각이 들었던 건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날수 없을거란 확신.
이젠 그럴 수 없겠다는 확신.
그건 이제 포기해야되나싶은 ..막연한 아쉬움.
그렇게 사는거야.
최고로 만족할 수는 없어.
시간은 가고있고 되돌릴 순 없는거니까.
그와 낄낄대며 아이스크림을 먹던 그 슈퍼 앞에서
같이 먹던 그 아이스크림을 살까 하다가는
곧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 아이스크림의 이름처럼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자위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 반쯤 감긴 눈을 억지로 뜨고
후회할것같은 감정을 기록하는게
얼마나 어리석은일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할수밖에 없는게 나란 인간이었다.
사람의 감정이란 얼마나 비합리적인것인가란
생각에 다행히 피식댈수 있었다.
그는 세상 어디에선가 숨쉬고 있을테고
함께 먹던 아이스크림이 존재하듯
부정할 수 없는 과거다.
그 과거의 감정은 어느정도 퇴색되었지만
사실이었다는 것 자체는 여전히 내게
의미로 기억되나보다.
술을 많이 먹어 토할것같던 그 역함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돌아설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술이 깰때까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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