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덕분에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가슴속에 풍부하게 채워졌달까.
60년대 영화를 보는듯 하면서도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이야기에 흠뻑 빠졌었다.
소설인듯, 소설이 아닌듯 한 이야기의 설명방식과 흐름에 매료되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다소 거칠다.
배경 자체가 다소 거친 시대였기에
그 거친 배경에서 벌어진 일들이 제법 당연하게 와닿았다.
그 어느것도 될 수 있었던 이야기들.
금복과 춘희.
수 없이 반복되는 인간사의 법칙.
고래는 금복에게 희망이자 선망이자 꿈이었던 대상이었지만
물속으로 사라지는 고래처럼 금복이 만들어낸 고래는 화염속에서 덧없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춘희가 서명란에 개망초꽃을 그려넣었을 때, 책에서 그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이 거칠디 거친 여자들의 인생사 전체가 개망초 꽃처럼 순수해지는 기분마져도 들었다.
시대적인 배경 자체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어마어마한 일들이 거침없이 아무렇지 않은듯 휙휙 벌어지고 있기에
그 스토리를 쫓아가다보니 어느샌가 세월이 훌쩍 지나있는 느낌이었다.
책을 통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강한 개성으로 인해 머릿속에 이들에 대한 잔상은 제법 오래 갈 것 같다.
노파의 히죽거리는 입 사이로 보이는 썩어빠진 검은 이,
세상 여성스럽던 금복의 남성화,
거구의 반편이 춘희,
흰 양장을 한 칼자국,
비릿한 냄새의 남루한 생선장수,
벌들이 애워싼 애꾸눈 등등.
글을 읽고 있지만 만화를 보는 느낌이 드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만화 같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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