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 8. 21. 고양이

by ㅇ심해어ㅇ 2023. 6. 22.

밤 11시가 다 되어 창 밖에서 아르릉 거리며 싸우는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여름이면 언제나처럼 들리는 동네 길냥들의 싸움이려니.
창 가에 앉아 야웅캬웅 흉내내고 혼자 놀고 있었다.

잠시 뒤 언니가 들어오면서 아유 재수없어를 연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왜그러냐 했더니 집 안 화단 앞에 까만 고양이 한마리가 죽어 있었단 것이었다.
심지어 밟을 뻔도 했다며 정말 고양이는 싫어! 하더니 화장실로 갔다.

아..순간 너무너무 미안했다.
옆에서 피튀기며 생사를 건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난 그냥 흉내내며 혼자 놀고 있었구나..

씁쓸한 마음에 슬쩍 밖으로 나가 보니 계단 앞에 까만 고양이가 누워있었다.
하지만 언니 말처럼 죽지는 않았나보다. 아픈 소리를 내고 고개를 들려고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림자처럼 그런 까만 고양이 옆엔 작은 얼룩 고양이가 한 마리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다시 보니 까만 고양이도 상당히 작은 아이였다.
멍청하게 그 녀석들을 멀리서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한동안 경계를 하던 얼룩이 녀석이 시선을 나에게서 다시 까만 고양이로 옮긴다.

설마.. 지키고 있는거야? 라고 생각하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척 했다.
인기척만 들려도 도망가는 길냥이 습성상 분명 피해 달아날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얼룩이 녀석은 움찔 한 번 안하고 나를 노려보는 듯 바라보며 그 자리를 지켰다.
심지어 내가 바로 옆까지 갔는데도 다가오지 말라는 듯 쳐다만 볼 뿐이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에 다시 들어와 냉장고를 뒤져보니
먹다남은 후지살 몇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렌지로 해동해서 후후 불고 식혀서는 얼룩이 고양이 근처에 놔뒀다.

그리고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검은 고양이를 지켜봤는데 그 녀석은 이제
움직일 힘이 없는건지 정말 죽은 건지 이젠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런 그 녀석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자리를 잡은 얼룩이는
고기쪽을 흘끗 한번 보더니 이내 다시 검정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멀찌거니 자리잡고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보고 있었다.

아기 티도 아직 안벗은 것같은 작은 고양이의 의리에
왠지모르게 내가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란 동물보다
본능에 끌려 쓰레기통을 뒤지는 너희들이 더 낫다.

밖은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내 깜냥에 그 아이를 안고 이 새벽 동물병원을 찾진 못한다.
게다가 나도 언니처럼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인간 중 하나다.

하지만 빌고 또 빈다.
단지 언니가 내뱉은 양 재수없어서가 아니라
새벽녘 선선한 공기를 맡으며 기운 차려 비틀거리더라도 일어나
친구와 함께 고기 한 점 먹고 갈 길 갔으면.

왠지 잠이 오질 않아 끄적여본다.
얼룩이 녀석이 누워있는 녀석을 바라보던 그 시선이
당췌 잊혀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