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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 테드창

by ㅇ심해어ㅇ 2023. 7. 9.

2019년에 사두고 이제야 보게 된 책이다.
당시 양장본에 영롱한 별빛같은 표지에 홀려 사긴 했는데 나는 SF적인 소설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테드창이라면 과학소설을 쓰는 소설가다.
테드창이 말하는 "숨"이란 어떤 의미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첫번째 단편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내가 생각했던 "숨"의 이미지에 부합했다.
배경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가 나올법한 과거의 무슬림의 세상이지만 그 안에 신비하게 존재하는 세월의 문이라는 타임슬립을 교묘하게 녹여내었다.

주인공은 미래의 자신을 만나는 등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주인공은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미래를 미리 안다고 해서 과거를 지울 수 없는 법이다.


그 다음 단편이 바로 '숨'이다.
타이타늄으로 만들어진 인체, 허파를 교체하며 영원히 살아가는 인류가 존재한다는 세계관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점차 시간이 느려지는 경험을 자신의 뇌를 해부하는 과정으로부터 설명하며 시간이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뇌가 느리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원인은 압력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에 의존해 작동하는 뇌가 공기저장소인 크롬으로 덮여진 자신들의 우주 속의 공기 흐름이 감속하자 느려지고 있었던 것. 

결국 주인공은 인간은 숨을 쉬며 공기를 통해 살고 있는게 아닌 공기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흐름에 의존해 살고 있었다는 가설을 발표하고 언젠가는 느려지다가 죽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종국에 종말을 맞이하는 인류를  발견하게 될 다른 우주의 탐험가를 위해 기록을 남긴다.

소설속에서는 인간을 기계화하여 죽음을 색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유기체가 꿈꾸는 영생은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지만 고도화된 기술로 만들어진 기계화된 인간의 죽음도 어쨌거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exhalation"이란 의미는 내뱉는 숨의 흐름과 삶의 비영속성이었다. 

그 외에도 스스로 학습하는 AI 프로그램을 오프라인 아바타에 입혀 성인용품으로 만들기 위해 도덕적 책임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상업회사와 그들을 키워온 사람들의 혼란을 그리는 모습에서는 지금 이 시점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도덕성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부모를 탓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인간 보모에게 학대당한 자식을 위해 로봇보모를 만들었으나,로봇보모에게 키워진 인간이, 인간이 아닌 로봇보모에게만 마음을 연다는 단편,

블랙미러에서 본 것 같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생체이식 라이프로그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한계 중 어떤것이 합리적인가를 떠나 어떤것이 인간적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단편도 존재한다.

세상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용 자체도 쉽게 줄줄 읽혀내려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떤 모습인지, 어떤 구조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넘어갈 수 있는 내용도 많았다.

기술 대 인간의 역사, 합리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과거와 미래의 중첩을 통해 고민을 할 만한 거리들을 무차별 던져주고 결론에 다다라서는, 독자 니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묻는듯하다.

이 책은 테드창이 교묘하게 테크놀로지로 위장한 철학책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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