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우연히 다이소에서 화분에 든 5천원짜리 해피트리를 산 것이 시작이었다.
내 돈 주고 처음 식물을 사 본 것이었다.
그 전 까지만 해도 선물로 받은 작은 선인장도 말려 죽이곤 했었는데
무슨 생각에서 였는지 그 날은 홀린 듯 화분 하나를 집어 들었다.
당시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애정만 듬뿍 주다가 한 달 만에 과습으로 해피트리를 보내자
갑자기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뭐가 잘못 되었는지를 알았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흙을 사고, 영양제를 사고, 나 같은 초보에게 쉽게 죽지 않는다는 식물을 여럿 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구입해서 지금까지 살아계신 홍콩야자씨다.
당시 작은 포트로 2,000원 주고 샀었다.
아래가 지금 사진이다.
너무 위로 자라 머리끄댕이 댕강해서 옆에 심어둔 아이도 잘 자리고 있고
나머지 한가닥도 댕강해서 다른 화분에 심어 사무실에서 잘 살고 있다.
요때 같이 키우던 장미허브님은 이사 중 얼어서 사망하셨고
엄청나게 키웠던 스파티필름과 포인세티아는 고향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
(아빠가 심하게 방치하심..)
산세베리아는 언니에게 뺏겼었는데 죽을동 말동 엄청 고생중인데 아직 생명은 붙어있단다.
정말 멋지게 8년 정도 키웠던 1500원짜리 행운목도 최근 이사하기 직전 사망했다.
갑자기 사망했는데 아무래도 과습이었던 듯 하다.
다육이들은 전에 살던 집에서 모두 돌아가셨다. 북향이라 해가 잘 들지 않는데다가
베란다 선팅을 너무 진하게 해두어 음지식물 외에는 전부 돌아가셨다.
현재 잘 살고 계신 분들은
1. 한동안 방치하다가 이사하면서 분갈이 해줬는데 그 이후로 새순 내어주고 있는 칼라데아 제브리나,
2. 처음에 배추로 오해 받았으나 지금은 외목대로 멋지게 큰 떡갈고무나무,
3. 해를 잘 못보던 시절 웃자라 너무 볼품없이 커버린 멜라민 고무나무,
4. 베란다 밖에 내놓고 눈이고 비고 다 맞으며 클때가 젤 예뻣던 남천,
5. 무늬종에 꽂혀서 사게된 스노우 사파이어,
6. 플랜테리어에서는 빠지지 않는 알로카시아,(잎을 잘라 물꽂이해서 침대 옆에 두면 한 달은 가는 듯)
7. 예민해도 너무 예민하셔서 최근 잎 다 말리고 동면중이신 천리향,(올해 꽃보긴 글렀음)
8. 편하게 꽃 좀 보자 싶어서 다시 입양한 스파티필름,
9. 보기엔 튼튼해 보이지만 추위에 약해 까맣게 잎이 괴사 중인 콤팩타,
10. 보라색이 예쁜 부자란,
11. 무늬종에 꽂혔을 때 같이 산 수채화 고무나무,
12. 제일 추운날 받았다가 시들시들 죽고 있는 오로라,
13. 풍성한 느낌을 받고 싶어 산 금사철, 은사철
14. 사무실에 두고 바라보고 싶어서 산 테이블야자,
15. 색깔이 예뻐서 샀는데 곧 색이 없어질 컬러콩고 두 분,
16. 무늬종에 꽂혔을때 구입한 미니 스윗하트 고무나무,(잎이 하트모양임)
17. 동양적인 느낌의 죽백나무,
18. 사무실에서 다 죽어가던 빅토리아, 집에서 요양중
19. 애초에 위로 올곧게 자라지 않는 스투키님(가까이 가기도 힘들정도로 사방팔방 가지 뻗었음)
20. 알뿌리로 요양중이신 카라까지.
요게 현재 살아계신 식물님들이다.
그 외 돌아가신 식물님들이야 셀 수가 없다.
해피트리님, 스트라이프 벤자민님, 사무실에서 빛 못보고 돌아가신 마리안느님,
택배로 올 때부터 상태 안 좋았던 파비안님, 덩굴이 너무 뻗어버려 물 안주고 죽여버린 몬스테라 아단소니님.
그 외 수 십 종류의 다육이님덜.
사람들은 식물은 자라는 속도가 나지 않아 못키우겠다고 하거나
흙 날리고 벌레 생겨서 못키우겠다고 한다.
몰라서 그래.
작은 포트를 사와 죽이지 않고 크게 키우는데서 오는 희열이 얼마나 잔잔하고 뿌듯하게 하는지.
그래서 꼭 작은 것들만 산다.
작아서 죽기도 십상이다.
그렇지만 커가는 걸 지켜보는 건 정말 큰 즐거움이다.
매일매일 집에 가면 쭈그리고 앉아서 얼마나 싹이 올라왔는지,
아픈 아이는 새순이 잘 나오고 있는지 살펴보고 말 걸어주는 게 취미가 되었다.
남편이는 주말마다 보다보니 더 신기한가보다.
자기도 어느샌가 쭈그리고 앉아 말 걸고 있더라고 너무 신기하단다.
지금 가장 심각한 아이가 천리향이다.
애초에 처음 식재할 때부터 너무 큰 화분에 배수 안되는 흙을 써버려 뿌리가 상해 버렸다.
물을 줘도 흡수를 못하더니 잎들이 매달린 상태로 다 말라버렸다.
그냥 베란다에 방치할까 생각하다가..일단 물은 계속 줘보자 싶어 베란다로 내보내고 지켜보는 중이다.
예민보스가 따로없다. 분갈이 몸살은 또 어찌나 오랫동안 해대는지, 자리 옮기는 것도 손떨린다.
이제 난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 울 아부지가 예전에 하던 수순인데 싶다.
ㅎㅎㅎㅎ
봄만 되면 그렇게 푸릇푸릇한 것들에 자꾸 눈이간다.
지갑도 같이 열려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