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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고욤이

by ㅇ심해어ㅇ 2023. 6. 7.

3월 즈음해서 우리집 앞을 찾은 길냥이 한마리와 만났다.
길냥이 들 중 해마다 찾아오는 녀석도 있었던터라
이 녀석에게도 눈을 깜박여주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아 이 큰 눈망울하며 작은 귀. 너는 족보있는 녀석이 아니냐.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난 뒤
일정 시간이 되면 녀석은 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녀석과의 거리가 3미터가 2미터가 되고 1미터가 되다가 드디어 내 손을 허락하던 그 날,
나는 느꼈다. 이 녀석이 많이 외로웠었구나.
그렇게 경계를 하던 녀석이 내가 손을 뻗자 온 몸을 그 손에 맡기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키우다가 버렸거나. 집을 나왔거나.
처음 사료를 줬을때 헉헉 소리를 내면서 허겁지겁 사료를 삼키고
물은 거의 한대접은 마신거 같다. 아. 많이 말랐다. 오래 굶었구나.

그렇게 인연이 된 녀석에게 나는 출근할 때 사료와 물을 두고 나가는 게 일이 되었고
퇴근하면 안부를 묻고 사료를 건내고 손을 내주었다.
그 사이 누군가가 사료통을 버리고 물그릇을 던져버리는 일이 꽤 있었다.
그렇게 2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녀석이 나를 따라 계단을 올라왔고
현관문을 열자 기웃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다 싶어 문을 닫고 녀석이 돌아다니도록 두었다.
녀석은 한동안 싱크대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곧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화장실 문을 열어주자 들어가는 순간! 찬스!
나는 고양이를 씻겼다. 생전 처음 고양이를 씻기는거라 완전 쫄았었는데
이 녀석은 작은 소리로 야옹거리고 도망만 가려고 할 뿐 의외로 얌전했다.
발톱을 세우긴커녕 그 큰 눈으로 놔달라고 애원하기만 할 뿐이었다.

일단 대충 씻기고 드라이어로 말려주고 한동안 그냥 두었다.
녀석은 온몸을 그루밍하며 구석에 숨어 나를 슬쩍슬쩍 훔쳐봤다.
자려고 불을 끄자 침대 밑으로 와서 엎드리더니 곧 그릉그릉 소리가 났다.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한다길래 박스도 둬봤지만 녀석은 침대밑 방석을 선택했다.

다음날 아침, 누군가가 쳐다보는 기분이 들어서 눈을 떴는데
옆으로 누워있던 나와 고양이의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침대에 매달려 내가 자고있는걸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데 그 녀석이 졸졸졸 쫓아다녔다.
이런 개냥이! 널 두고 나가야 하다니.

하지만 계속 둘 수도 없었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자신도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에 잃어버린 고양이 찾는 글도 찾아보고 글도 올렸다.
연락 오는 문자 전화들은 죄다 분양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너무 많이 왔다.


하기사 이런 귀욤이를. 나같아도 분양해 달라고 떼를 썼겠다.


하루가 지나자 완전히 적응했는지 녀석은 침대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손만보면 달려드는 녀석. 니가 고양이라니. 개잖아. 그만 고양이 탈을 벗지그래.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슬슬 나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동물을 직접 키우기엔 준비가 필요했고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분양해 달라는 사람에게 보내기도 꺼림칙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워본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바로 콜이란다.
친구는 퇴근하자마자 대전에서 서울로 달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사진이 왔다.


얘 고양이가 아닌거 같아. 가 그 친구의 첫 대사였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이미 중성화 수술을 마친 녀석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쌤이 이런 고양이라면 열마리도 키우겠다며 칭찬을 했다고 한다.

여튼 그 녀석은 금방 적응을 했고 워낙에 깔끔을 떠시다가
모래를 파헤치면서 지 똥도 같이 밖으로 날려버린다며 얘땜에 웃고 산단다.
그렇지만 어쩜 그렇게 개냥인지 모르겠다며 신기하다고도 한다.

얼마전 예방접종을 하고 집에 데려왔다며 사진을 보내줬는데
고양이를 타이거로 키웠다, 살이 왜이렇게 쪘냐고 또 웃었다.



가장 최근 사진이란다.
어서 참치캔을 사러 나가자는 표정이라며 친구가 보내줬다.



이 녀석의 이름은 고욤이다.
내 나름 그냥 까꿍이라고 불렀는데(나는 이쁘고 귀엽고 좋으면 다 까꿍이임;)
고욤이라는 예쁜 이름을 얻고 잘 살고 있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고양이라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나름 나도 찾아주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지금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잘 살고 있으니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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